자원의 저주 

최 연 충(전 우루과이 대사)

지난 5월 베네수엘라는 이란으로부터 153만 배럴의 석유를 들여왔다. 이를 두고 이란이 지원한 건지 판매한 건지 뒷말이 많았지만, 이란은 제값을 받고 수출한 것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어쨌거나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베네수엘라라면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국이 아닌가. 추정 매장량이 무려 3,000억 배럴을 상회한다. 전세계 매장량의 18%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그런 나라가 수출은커녕 외국에서 석유를 사오다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베네수엘라는 1998년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집권하면서 사회 전체가 급속하게 포퓰리즘에 빠져들었다. 차베스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전면적인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빈곤층에게는 무상 또는 초저가로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각종 명목으로 생활보조금을 지급했다. 내수용 휘발유가격은 거의 공짜수준이었다. 국민들은 환호했다. 한편 쿠바를 포함한 카리브지역 국가들을 끌어들여《페트로카리브》라는 지역동맹을 결성하고 맹주 행세를 하면서 회원국들에게 값싸게 원유를 공급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집권기간 내내 세계 시장에서 고유가(高油價)가 지속되었기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달콤한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2013년 3월 차베스가 사망한 이후 국제유가는 폭락하였고, 이에 따라 국가 재정 수입은 급감하였다. 그동안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마구 탕진하고 생산시설 재투자를 외면해온 결과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원유생산설비가 노후되어 생산량이 줄어들고 정제비용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경제제재 조치를 가하면서 원유 수출길이 막혔다. 내수용 휘발유 공급 물량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젠 주유소마다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장사진을 치고 몇 시간씩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국과도 맞짱을 뜰 정도로 베네수엘라를 기세등등하게 해주었던 바로 그 원유가 이젠 국민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자원이 오히려 독이 된 사례는 더 있다. 현재의 칠레 북부 아따까마 사막 일원은 19세기말까지 중요한 전략자원이었던 초석의 매장지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원래 이 지역은 볼리비아 영토로 간주되었지만, 초석 채굴 이권을 둘러싸고 볼리비아와 칠레가 갈등을 빚게 되면서 결국 전쟁의 발화점이 되고 만다. 1879년 4월 칠레가 선전포고를 하여 양국 간 전쟁이 발발하였고, 페루가 볼리비아 측에 가담함으로써 칠레, 볼리비아 / 페루 3국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이른바《태평양전쟁》이다. 전쟁은 칠레의 승리로 끝나고, 칠레는 그 보상으로 아따까마 지역을 자국 영토로 확보하게 되었다. 반면 페루와 볼리비아는 패전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특히 볼리비아는 아따까마 사막 일대를 완전히 상실하고, 태평양쪽으로 진출하는 출구까지 막히면서 졸지에 고립된 내륙국이 되어버렸다. 주어진 자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낭패를 보고 국운까지 기울게 되었으니 딱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5세기말 콜롬부스가 신대륙에 상륙한 이후 전개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지배 자체가 곧 자원에 대한 탐닉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16세기말 무렵에는 신대륙에서 유입된 은에 힘입어 유럽의 은 보유량이 7배로 늘어났을 정도였다. 당시 신대륙 최대의 은광이었던 볼리비아의 뽀또시(Potosi)는 일확천금 또는 막대한 富와 동의어로 쓰였다. 물론 원주민들은 그 富를 생산해내느라 가혹한 노동에 내몰리며 굶주렸을 뿐이었으니, 그들로서는 그 은이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어디 천연자원만이랴, 세상사 모두가 그렇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다. 뜻밖의 횡재를 눈앞에 둘수록 경계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주어진 여건이 팍팍하다고 낙심할 일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