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온도계 

조 석 준(기후변화저널 대표, 제9대 기상청장)

한 조사에 따르면 곤충이나 벌레들이 내는 소리는 날씨에 따라 그 양상이 매우 다른데, 기상조건 가운데에서도 기온변화와 가장 관련이 깊다. 일반적으로 매미의 경우에는 섭씨 30도를 웃돌 때 성량이 가장 좋으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거나 비가 쏟아져 기온이 떨어질 때에는 소리가 아주 작아진다고 한다. 이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의 경우 매미소리가 한낮보다는 저녁 무렵에 잘 들리는 것이다.

초여름이나 늦은 여름에 한낮의 기온이 30도 안팎일 때는 매미가 한낮에만 요란스럽게 울어대고 아침, 저녁에는 다른 풀벌레들이 대신해서 울어주게 된다. 매미는 복부에 있는 고막을 진동시켜서 소리를 내지만, 귀뚜라미는 앞날개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종류에 따라서 앞날개에 50~250개의 이빨 같은 것이 돋아나 있는데, 이것들이 서로 엇갈리면서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섭씨 24도를 전후해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9월 초 새벽이나 저녁 무렵의 기온이 24도선에 머물기 때문에, 이때가 가장 아름다운 귀뚜라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잘 계산하면 그 당시의 기온을 정확히 알 수 있다. 14초 동안에 귀뚜라미가 내는 소리를 세어서 그 숫자에 40을 더하면 화씨로 표시되는 그때의 기온이 된다. 예를 들어서 귀뚜라미가 14초 동안에 서른 다섯 번을 찌르륵찌르륵하고 울었다고 하자. 35 더하기 40은 75로서 그 당시의 화씨온도는 75도이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섭씨온도로 고칠 경우는 24도가 된다. 다시 말해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가장 아름답고 왕성하게 들린다는 섭씨 24도에는 2초 동안에 다섯 번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지구상에는 모두 1천 5백여 종의 귀뚜라미가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13종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귀뚜라미 가운데에서는 왕귀뚜라미의 소리가 으뜸이라고 한다. 왕귀뚜라미의 소리는 보통 귀뚜라미에 비해서 진동수가 적으나 다소 굵은 소리를 내며 어딘지 모르게 슬픈 느낌을 갖게 해준다. 이 밖에 다른 가을 풀벌레들도 기온변화에 따라 다른 소리들을 내고 있다. 예를 들어 여치라는 곤충은 기온이 낮을 때에는 소리를 길게 빼지 않고 토막토막 끊어버린다. 일반적으로 초가을에는 풀벌레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다가도 가을이 깊어지면 낮에만 겨우 소리를 내는 것은 바로 날씨가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귀뚜라미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사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애절한 소리라고 생각해서 먼 여행을 할 때는 고향의 귀뚜라미를 옆에 담아가지고 다녔다고도 한다. 또, 중국에서는 투견이나 닭싸움처럼 귀뚜라미를 서로 싸움시켜서 대장군 귀뚜라미를 가리기도 했다.

옛날의 풍류객들은 초가을 밤이면 여럿이 모여앉아서 〈추공회>라는 이름으로 가을의 풀벌레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짓고 시를 읊기도 했다. 이것은 대자연 속에서 같이 살아가는 풀벌레들과도 교감을 나누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겠다는 순수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은 농약오염을 비롯한 각종 공해로 도시나 공단지역에서는 풀벌레소리를 듣기 어렵다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